영혼의 고향 청송대 모교를 떠난지 육십여년이
흘렀지만 연세는 여전히 어머니 품이요, 안식처다. 연세 캠퍼스는 온통 경이요, 탄성 그 자체였다. 영화 ‘제3의 사나이’ 라스트신을 연상케 하는 백양로 하며,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답고 매력 가득한 캠퍼스, 그 중에서도 청송대는 연세의 숨결이자 영혼의 고향이다. 천혜의 동산 청송대는 사계절
내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오월이면 새소리, 솔바람 사이로
푸른 하늘과 담록색 잎 향기와 이끼 내음이 한데 어우러지고 아카시아 꽃 향기까지 불어오면 청송대는 유토피아가 된다. 새내기 시절, 여학생과 함께 거닐었던 잊지 못할 추억이 깃든 곳, 청송대는 학생들의
사랑과 낭만과 열정을 품어 주었고, 그 숲 속에 안기면 치유의 공간이자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던
수필가 이양하님은 일찍이 명문 수필 ‘신록예찬’에서 연세숲의 아름다움을 칭송했고 동문 시인 윤동주님은 별빛 쏟아지는 청송대 숲을 거닐면서
시 ‘별 헤는 밤’을 노래하였다. 대학 신입생 시절 나는 숨겨진 보석과 같은 청송대를 걸을 때 마다 이 곳에 음악이 울려 퍼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1950년대 말 음악방송은 KBS와
UN사 방송인 VUNC (유엔군총사령부방송), AFKN(주한미군미군방송) 정도가 유일했다. KBS는 주1회 30분간 팝송을 들려주었고, 1960년대
들어서 KBS 제2라디오에서 주1회 30분간 최신 팝송을 소개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통로가
제한적이다 보니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 음악감상실이
본격 등장하며 전성기를 이뤘다. 지금의 SK 건물 자리에는
그 유명한 ‘쎄시봉’이, 길
건너 청진동에는 ‘르네상스’, 종로2가 ‘디쉐네’, 명동 음악다방
‘돌체’, 충무로 ‘카네기’ 등이 그 주역이었다. 지금에 비해 문화가 척박했던
1959년 11월 연세교육방송국 (YBS) 개국은 당시 학생들에게 새로운 음악의 숨결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YBS
개국
초기 방송활동은 스튜디오에서 캠퍼스 곳곳의 스피커로 음악을 내보내는 방식이었는데, 당시에는 팝송 레코드판이
귀해서 주로 테이프로 팝송을 녹음해 들려주었다. 그러나 고전음악과 종교음악을 제외한 음악은 YBS에서
방송해서는 안된다는 보수적인 신학과 교수들의 주장에 따라 음악 방송의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팝음악을 듣고 싶어했지만 기회에 부응할 방법이 없었다. 이에 스튜디오 방송과 병행한 야외 음악회를 기획하게 되었으니, 이름하여 ‘숲속의 향연’이다. 아름다운 연세의 숲 청송대에서 자유롭게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정서 순화와 대학문화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제안을 대학 당국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도 학교의 입장을 고려해 선곡은 클래식과 팝송을 적절히 안배하였다. 제1회 행사는 1961년 6월 24일 청송대에서
개최됐다. 솔바람 부는 숲에 안겨 감미로운 팝송과 클래식, 오페라
아리아, 영화 음악 등을 들으며 연세인들은 음악의 향연을 만끽했다. ‘숲속의 향연’은 YBS가 탄생시키고, 연세대의 대표 행사로 자리매김한 주옥 같은 선물이다. 이 행사는
세월이 흐르며 형식과 내용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개최되지 못한 지난해를 제외하고는 통산
83회에 걸쳐 면면히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푸르른 오월이 되면 해마다 ‘숲속의 향연’이 열리고 동문들과 함께
방송 활동을 할 수 있었기에 청송대가 주는 사랑과 행복감은 가히 비할 바 없다. 다시 화창한 봄이 오면
60여년 전 가난한 노래의 씨앗을 뿌려 긴 세월 동안 ‘숲속의
향연’이 울려 퍼질 수 있게 한 위대한 연세동산 청송대를 찾아 YBS
재학생 후배들과 거닐어 보고 싶다. 우리가 지키고 가꿔야 할
소중한 문화 유산인 청송대는 이제 다시 부활의 숨을 고르고 있다. ‘청송대 푸른 숲 가꾸기 사업’에 많은 연세 동문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린다.
YBS 창립기 Ann (국문 58) 강승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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