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초 신록으로 둘러싸인
상남경영원의 첫 생활이 시작되었다. 매주 금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정오까지 수업이 이루어졌다. 나는 대구에서 수업을 받으러 왔기에 금요일 밤에는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자야 했다. 당시 나는 현대자동차 근무 15년차의 간부사원이었다. 회사에서 선발한 소수의 인원을 현대차-연세대 MBA 마케팅과정을 이수토록 하는 프로젝트에 참가를 하게 된 것이다.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는 멋진 공원이었고,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수업을 마친 금요일 저녁에는 캠퍼스 안을 여유롭게 산책을 하며 다녔다.
어느 날인가 본관 앞으로
갔다가 본관 이름이 언더우드관, 그 옆 건물이 아펜젤러관으로 불려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국사책에서 본 선교사들 이름이었다. 구한말 역사의 현장에 내가 와
있다는 것이 가슴 뭉클했다. 기숙사로 돌아 오기 전 청송대 한 켠에 있는 바위에 앉았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많은 생각들을 했었던 것 같다.
그 후 내
손에는 마케팅 전공서적과 함께 구한말 선교사들의 기록을 담은 책이 들려져 있었다. 그때 나는 신앙생활을 20년 이상 하였지만,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되는 줄 알았던 시절이었다.
이후 난 청송대 숲에서
언더우드, 아펜젤러라는 이름을 묵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상남경영원
기숙사에서 잠을 자다가 환상을 경험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청송대는 그 당시 100여년전의 모습을 아마 그대로 간직한 숲이었기에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들과 교감하기가 좋은 장소였었던 것이다. 2003년말, MBA과정을
수료하고 신촌캠퍼스를 떠나기 전까지 나는 청송대 숲에서의 묵상을 계속하였다.
그 이후 자녀들이 선교훈련을
받고 이란, 아제르바이잔에 단기선교를 갔다 왔다. 온 가족이
선교사역을 위해 훈련을 받고 티벳. 라오스에 의료봉사활동도 다녀왔다.
신촌캠퍼스가 우리 가정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둘째 딸이 튀니지에 3년동안 선교사 사역을 담당하였다.
튀니지 현지에서 딸을 통해
소개 받은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가 구상한 국제학교설립을 위한 기초 자금을 얼마 전에 나는 제공하였다. 그
학교가 튀니지의 연세대학교가 되기를 소망하는 간절한 바램을 갖고 헌금을 했었다. 미약하나마 현재 그
학교는 첫 학기를 마치고, 둘째 학기를 개학하려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청송대 숲에서 묵상을 하는
동안 흘린 눈물이, 튀니지를 변화 시키기 위한 거룩한 눈물이 되어 버린 것이 지금 생각해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저 감사 할 따름이다.
현대자동차를 3년전에 퇴직한 나는 기회가 되면 튀니지 현지에서 선교사님들의 뒷바라지 일을 해 드리고 싶다. 이것이 나의 인생 마지막
프로젝트로 정해 두었다.
청송대 숲에서의 눈물이
한 순간 스쳐 지나간 눈물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