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라(聽) 소나무(松)여..(臺) 나의 SNS를 지배하라..!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등장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는 직접 만나지 않아도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순기능으로 우리 안에 빠르게 자리 잡아갔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너나할 것 없이 SNS 계정을 만들어 서로 ‘좋아요’를 날리느라 정신없었고, 나도 질새라 이 시류에 빠르게 편승하였다. ‘보여주기식 삶’이 내 안에 자리 잡은 것은 아마 첫 SNS 계정을 만든 이때부터였으리라.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편집하여, SNS에 업로드한 후 친구들에게 나의 일상을 자랑하였다. ‘청송대’가 내 SNS 계정에 첫등장한 것은 2008년 여름이다. 가족들과 서울에 있는 교회에 들렀다가 캠퍼스 구경 겸 청송대를 산책했다. 눈 부실만큼 강렬한 태양 빛과 푸른빛이 한창이었던 나무들, 맑은 공기 그리고 바삭거리는 흙길의 소리는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나는 가족들과 ‘주말의 여유’를 이 단아한 산책길에서 보내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최우선 관심사였다. 아빠의 디지털카메라로 공들여 사진을 찍고, 당시 세간에서 가장 유명했던 SNS인 싸*월드에 청송대의 나를 업로드하였다. 조회수는 많이 찍혔던 것 같다.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나에게 청송대는. 그로부터 3년 후, 입시를 위해 재수를 준비하던 2011년, 이곳을 다니던 친구를 보러 잠깐 여기 캠퍼스에 들렸을 때였다. 친구와 밥을 먹고 이곳 교정을 걷는데, 그날 오랜만에 여기 이곳의 숲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름의 추억이 있는 이 숲을 오랜만에 만났다는 반가움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런 멋진 장소를 다시 SNS로 자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온 감탄이었다. 당시 최신 스마트폰이었던 아이폰3GS로 친구와 사진을 찍고, 2011년 세간의 가장 유명한 SNS였던 페*스북에 이를 업로드하였다. 너무 두근두근거리고 신났다. 이런 장소를 다시 만나 내 좋아요가 보장을 받다니..! 그리고 끝이었다. 청송대는 나에게. 그로부터 4년 후, 2015년, 캐나다로 이민 갔던 초등학교 때 친구가 오랜만에 한국에 놀러 왔다. 친구는 연세대학교 캠퍼스가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언더우드관을 구경하던 찰나- “어! 여기 캠퍼스에 좋은 데가 있어” 나의 뇌리에 청송대가 번쩍하고 스쳐갔다. ‘분위기 좋고 걷기 좋은 장소’라는 것은 명분이요, 어김없이 삼십분 이상의 구도 연구와 함께 갤럭시S5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져내었다. 그리고 당시 세간의 주목받는 SNS였던 인*타그램에 청송대의 내가 업로드 되었다. 좋아요는 꽤 많이 받았던 것 같다. 72개 조금 넘게? 그렇게 청송대는 이제는, 내 인생에서 잊혀질 줄 알았다 < . . . > 2008년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이나 하던 코흘리개 종서는 이제는 진짜 나의 꿈을 찾아, 학업의 연속을 위해 2019년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다. 문과생이었던 나는 그동안 공대로도 갔다가, 방송에도 뜻을 품었다가, 이도 저도 아니고 돌연 휴학을 했다가 하는 등 많은 풍파를 겪은 후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인문학부로 돌아온 것이다. ‘멋진 역사교사’가 되겠다는 사명 하에 공부 또 공부. 중앙도서관에서 책 빌려 밤새 발제도 하고, 동기들과 스터디도 하고, 봉사도 하고, 교육업계 일도 하고, 학부 때보다 더 열심히 산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2020년 4월 14일 화창한 햇빛이 쬐이는 따스한 어느 봄날, 스터디원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교생에 들고 가야 할 교육실습록을 수령하러 교육과학관에 들른 직후, 한 동기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청송대에서 잠깐 산책하고 들어갈까?” “청송대?!?!....................” 그랬다. 그동안 여러 번 방문했었고 여러 번 사진으로도 남겼지만, 정작 청송대가 항상 같이 숨 쉬고 있는 여기 이 캠퍼스에 원생으로 입학하고 일 년 남짓이 지날 때까지, 나는 수년 동안 여기 이곳 이 숲을 까먹고 있었다. 청송대의 입구를 알리는 화창한 나무들을 분명히 그날 교육과학관 앞에서 봤는데도 동기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청송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비로소 청송대의 푸른빛이 한창인 나무들, 맑은 공기 그리고 바삭거리는 흙길의 소리가 똑바로 보였고 내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 ‘이곳은 항상 여기 그대로 있었는데, 바보같이 난 이곳의 진정한 의미, ‘여유’를, 입학을 하고나서도 일 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깨달았구나...!’ . . . . . . “사진 한 장만 찍어줄래?” “그래, 근데 어디에 올리려구? 인*타그램?”
“아니, 그냥.. 내 사진첩에 보관하려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