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대'라는 단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무살 때의 어떤 벅차오름과 어리숙한 감각, 그리고 묘한 서글픔이 떠올라 괜히 코끝이 찡해지네요. 자우림의 노래 '스물 다섯, 스물 하나'를 어디서 틀어놓은 듯합니다. 이런 이벤트 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난생 처음 상경해서 지하철 타는 법도 모르던 대학 초년생 시절, 저에게 서울은, 그리고 대학은 조금 각박한 곳이었어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고, 목소리를 크게 내야 했습니다. 음, 뭐라도 말을 해야 했어요. 잘나보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싸(아웃사이더)'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똑똑한 조원들 사이에서 무식해보이지 않기 위해서.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지쳐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매일 보던 멋있는 연희관이 그저 거대한 벽처럼 느껴질 때쯤, 한숨을 쉬기 위해 산소같은 청송대를 찾아가게 되지요.
그리고는 가만히 소나무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들을 '청'에 소나무 '송' 이니까요. 그곳의 저는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소나무가 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기분이 들더군요.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질러도 들어주는 이 없는 듯한 도시의 무심함 속에서, 오히려 멍하니 듣고 있을 때 제 진심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제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뭔지 깨닫게 되면 복잡했던 것들이 단순해 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청송대는 '소나무를 듣는 곳'이기도 하지만, '소나무가 들어주는 곳'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저는 직장이라는 도시에 삽니다. 보이지 않는 경쟁,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관계, 해야하는 일의 압박. 그래도 대학시절 배운 대로, 저는 제 진심을 들음으로써 튼튼한 뿌리를 내려 갑니다. 그리고 주변 동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네요. 청송대같은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