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하고 있는 64세의 남성이다. IMF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나의 일상은 길 위의 인생으로 전환되어 그 어느 곳이나 삶의 현장이다. 연세대하고 세브란스병원은 우리집 다음으로 많이 드나드는 곳이지만 김승욱 시인께서 쓴 책 '술통'을 읽기 전에는 청송대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김 시인은 연세대학을 졸업하였고 짧은 생을 살다 별들의 고향으로 떠나셨다. 김 시인은 '술통'이란 책에서 청송대는 막걸리를 마시기 좋은 곳이라 하셨다. 연대 북문을 통해 병원으로 갈때 오른쪽 잘 다듬어진 곳이 청송대였다. 나는 지난 2002년 10월부터 마포도서관에 등록하고 책을 대출하고 독서는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도서관을 간 계기는 심훈선생의 상록수를 눈물을 흘리면서 읽은 것을 필두로 지금까지 1500여전을 읽고 있다. 그 중에서 '윤동주 그 죽음에 관한 보고서' 라는 책을 읽었다. 조한주 라는 분이 쓴 책으로 조국의 광복을 제 앞에 두고 저주의 땅 일본 후쿠오카에서 사촌동생 송몽규 선생과 같은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의문의 주사를 맞고윤동주 선생과 송몽규 선생은 시차를 두고 이국에서 고인이 되셨다. 윤동주 송몽규 평전을 읽었다. 윤동주 하면 연희전문이고 의학을 하시라는 아버님의 권고와 문학을 하시려는 윤동주. 결국 문학의 길을 걷게 되시는데 청송대에 가면 새순이 돋아나는 봄 부터 단풍으로 채색되는 가을까지 아니 흰눈이 팔랑팔랑 내리던 어느 겨울에 조국의 암담한 현실 앞에 울분을 삼키는 울대 소리를 들었을 그 나무 앞에 서서 윤동주 선생의 흔적을 다듬어 보고 싶다. 오늘도 내일도 청송대를 지나가게 될 것이고 그 사이 나의 눈길은 청송대 나무들을 본다. 이 나무일까 저 나무일까. 저 곳 어딘가에 분명 윤동주 선생의 자취가 서려 있을 것인데 한바퀴라도 더 줄여야 하는 운전자의 마음으로는 차를 세워두고 청송대에 선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감성에 젖어 윤동주 선생을 추억하면서 그 앞을 지난다. 에비슨의 생명연구센터 건물이 들어서기 이전에 그 곳에 어린이집이 있었고 그 어린이집도 몇번 운행 했던 곳인데 어느 해 가을. 청출어람의 하늘 병원 본관에서 무학 기숙사에 가는 손님을 모시고 갈때는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청송대에 나와 인도 위에 줄을 맞추는 중 이였다. 어린이 손에는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들려 있었다. 다시 병원을 향해 가는데 새천년관 삼거리에 당도하니 연설하시던 여 선생님이 손을 들었다. 횡단 하신다는 뜻. 차를 세우고 어린이들을 본다. 선생님은 인도위에 다시 정렬 그리고는 나를 향해서 공손한 배꼽인사. 선생님도 함께.. 순간 감격 했었다. 선생님과 어린이들의 인사에 감동 된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는 선생님의 인성에 차문을 내리고 나도 목례를 했다. 어린이의 마음은 백지. 그 위에 본대로 느낀대로 그려지는데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감사의 인성이란 씨를 뿌리셨다. 그런 인성을 가진 선생님의 심성이 곱디 곱다. 그 날 나의 일기는 그 선생님을 기록 했을것이다. 참로로 일기는 43년째 쓰고있다. 운행하다 보면 나들이 나선 어린이들을 보지만 감사의 인사를 나눈 기억은 없다. 그래서 세브란스 어린이집 선생님의 인성이 더 빛을 발하신다. 그때 마주했던 어린이들은 지금 중3 이상은 되었을 것인데 선생님의 인성이 어린이들에게 심어져 민들레 홀씨 처럼 여기저기에서 인성의 꽃으로 필 것이다. 3.1절을 앞두고 윤동주 선생을 추억하다보니 우리나라 독립의 재단에 망설임 없이 목숨을 올려 놓으신 수 많은 분들의 모습 햇살 받은 유리창 위로 번진다. 자 가자. 세상의 자리로 우뚝 서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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